부 자체를 죄로 보거나 죄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 획득을 위한 노력을 고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많은 경우 부를 죄로 보는 생각은 질투로 취급되거나 바보같은 생각으로 여겨지고, 부정한 방법이나 상속으로 얻은 부를 과시(과시가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하는 행위를 지탄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경멸의 비웃음과 함께 "너도 돈 있어봐라" 식의 대사가 따른다.
맞는 말이다. 이미 화폐와 부동산이 등장한 순간부터 부는 부의 불공평한 분배와 쌍둥이 형제였고, 공평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공평할 수도 없다. 부자가 가지는 우월감은, 그만한 돈이 있다면 누구라도 가진다. 돈 없는 자의 질투는 부자의 우월감만큼이나 당연하다. 가난도 영화도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젊은이에게는 실제로 처음 대면한 빈곤과 부가 충격이다. 의미론적으로 말하자면 음식을 연소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인 부와 부의 소비가 삶 자체를 결정지어버리는 데서 오는 충격이다.
거지나 왕자를 소재로 한 많은 극이 있다. 요즘에는 된장녀라는 캐릭터가 유행이다. 이는 부를 기준으로 한 설정인데, 같은 인간이지만 소유한 돈의 액수만 다른 것이 아니다. 모두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사람이다.
가끔 나는 왕자인 내 친구에게, 그가 사주는 커피를 얻어먹으면서 말하곤 한다. 최소한 과시는 하지 마라.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게 질투가 한 말인지 내가 한 말인지 종잡기 힘들다. 자판기 커피를 마셔야하나 아니면 오랜만에 캔커피를 먹을까 하는 정도의 고민을 하는 내 앞에서, 그저께 백만원짜리 지갑을 잃어버리고 어젠 또 사십만원어치 옷을 샀다는 말을 하는 친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삼천원짜리 백반을 먹어야 하는지 이천원짜리를 먹어야 하는지, 그냥 급식을 먹을지 고민한 날 저녁 인터넷에서 고급 진과 연어를 먹는 블로그를 볼 때. 나는 친구에게 달리 할 말이 없다. 미치지 않고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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