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성욕 억제의 결과

간디, 진리에 몸을 바친 한 인간의 사상과 실천

성욕을 억제한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으나, 완전히 정상적으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욕으로 알려진 간디 역시 성적 욕구의 억제에 있어 스스로와 힘들게 싸워야 했다.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과연 자위행위가 얼만큼의 성욕 해소를 발휘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위 링크에서 인용:

간디는 서른 일곱살에 ‘브라마차리아(자기 억제, 금욕)’을 선언했는데, 이와 관련해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그가 결혼 후3년 쯤 지난 16살 때였다. 심한 치루를 앓고 있던 아버지는 곧 임종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는데, 문제는 성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하루 24시간 내내 아내와 함께 성관계를 갖는 몽상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밤 11시쯤 삼촌과 교대를 한 그는 평소처럼 아내를 깨웠고, 잠시 후 하인이 달려와 아버지의 임종을 알렸다. 자신의 성욕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불효로 인한 죄책감, 인도의 법과 어긋나게 임신한 아내를 범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간디는 엄청난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겪어야 했다. 더구나 태어난 아이는 사나흘도 안 돼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외에도 간디의 성욕과 관련한 일화는 상당히 많다. 일례를 든다면, 말년에 ‘정열의 완전한 극복’에 이르지 못해 괴로워했던 간디는 브라마차리아 실험을 위해 증손녀 마누에게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했던 일이 추문이 되었고, 그 일로 그는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일흔이 넘어서까지 그는 젊은 여성을 잠자리에 끌어들였고, 그것은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60대 후반에그는 “성적으로 결백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마치 칼날 위를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고 고백할 정도로 고뇌와 방황은 일생을 따라다녔다.

간디뿐만 아니라 마틴 루터 킹이나 함석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욕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함석헌은 1960년에 저지른 죄(?)로 스승 유영모의 내침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고 풀어가는 논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평전을 쓰는 이들은 대체로 옹호하기 바쁘다. “다만 짐작컨대, 킹의 경우 공인으로서 그가 발휘하던 중요한 힘의 태반이 바로 이 영혼과 육신 양자 간의 내부 분열과 팽팽한 긴장에서 비롯되었으리라.” - 마셜 프래디, “철저한 고독속에서 괴로움을 감내한 경험이야말로 또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할 힘의 원천이 되지는 않을까. 함석헌의 경우가 그러했다.” -김성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