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8일 화요일
늦은 밤
몇 년이 지난다고 이런 밤이 가실 것 같지 않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으니 안다. 내가 스스로 불러낸 밤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자학에 가까운 욕심, 피해망상, 보상심리도 나의 일부다. 이제 어쩔 수 없어. 너에게도 나에게도 미안해.
나도 놀라울만큼 내 집착은 끝이 없다. 사라졌나 싶으면 그저 잠깐 자고 있던 것에 불과해서, 내 평정을 찢어놓는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좀 도와줄 수 없겠니. 넌 최선을 다했겠지. 알고 있어. 하지만 시작했으면 책임을 져줘.
이제는 무엇이 됐든 끝을 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절하게 다른 손을 찾아보았지만 잡는 이 하나 없었고, 결국 애증은 널 다시 찾아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떡해야 하나.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2010년 8월 12일 목요일
Recent tweets
This succubus has been haunting me for my life, and
will keep on teasing me for the rest of my life.
I don't know what to do with my own imaginary Fala but let her be.
2010년 7월 25일 일요일
크림슨 에디터
중학교 때부터 인터넷에 매력을 느끼고 동네 피시방을 드나들고 교실에 설치된 컴퓨터를 붙잡고 웹서핑을 했다. 뭐 아는 것은 없었고 딱히 흥미있는 정보도 없었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끌렸다.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소스 보기'라는 기능을 알게 되고 HTML/CSS를 혼자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인터넷에서) 아는 사람에게 서버 계정을 얻어서, 나중에는 직접 도메인과 호스팅 서비스를 사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고 부신 홈페이지가 이십개는 된다. 처음 열 개 정도는 오로지 메모장만 사용했고, 나중에는 에디터라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Crimson Editor를 썼다. 아마도 당시 최신 버전이었을 3.7.6을(3.4.6인가, 확실하지 않다) 애용했다. 이후에 더 최근 버전이 나왔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홈페이지 따위 방문해줄 사람도 없지만 그냥 내가 만들고 들여다보는 게 낙이었다. 포토샵 같은 것도 할줄 몰라서 순전히 HTML/CSS만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 번은 이미지를 완전히 배제한 것도 만든 적이 있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다. 제로보드를 가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다. 내가 만들어서 업로드한 스킨이 아마 지금도 엔지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블로그와 트위터로 만족하고 있다. 홈페이지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져버려서 더는 도메인도 사지 않는다. 하지만 HTML/CSS를 배워둔 덕에 남들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크림슨 에디터 덕에 교양 하나 익힌 셈 치면서 살고 있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외향성과 내향성
외향성과 내향성(extroversion and introversion)의 새로운 정의는 다음과 같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구해야만 안정을 얻는 것이 외향성, 내부에서 스스로를 인정함으로써 안정을 얻는 것이 내향성이다. 양 극단에 처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두 측면을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정을 얻는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둘 다 내게 중요하다. 다만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얻는 것은 비교적 그 과정이 명확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게 글쓰기는 자기를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성욕 억제의 결과
성욕을 억제한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으나, 완전히 정상적으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욕으로 알려진 간디 역시 성적 욕구의 억제에 있어 스스로와 힘들게 싸워야 했다.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과연 자위행위가 얼만큼의 성욕 해소를 발휘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위 링크에서 인용:
간디는 서른 일곱살에 ‘브라마차리아(자기 억제, 금욕)’을 선언했는데, 이와 관련해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그가 결혼 후3년 쯤 지난 16살 때였다. 심한 치루를 앓고 있던 아버지는 곧 임종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는데, 문제는 성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하루 24시간 내내 아내와 함께 성관계를 갖는 몽상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밤 11시쯤 삼촌과 교대를 한 그는 평소처럼 아내를 깨웠고, 잠시 후 하인이 달려와 아버지의 임종을 알렸다. 자신의 성욕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불효로 인한 죄책감, 인도의 법과 어긋나게 임신한 아내를 범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간디는 엄청난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겪어야 했다. 더구나 태어난 아이는 사나흘도 안 돼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외에도 간디의 성욕과 관련한 일화는 상당히 많다. 일례를 든다면, 말년에 ‘정열의 완전한 극복’에 이르지 못해 괴로워했던 간디는 브라마차리아 실험을 위해 증손녀 마누에게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했던 일이 추문이 되었고, 그 일로 그는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일흔이 넘어서까지 그는 젊은 여성을 잠자리에 끌어들였고, 그것은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60대 후반에그는 “성적으로 결백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마치 칼날 위를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고 고백할 정도로 고뇌와 방황은 일생을 따라다녔다.
간디뿐만 아니라 마틴 루터 킹이나 함석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욕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함석헌은 1960년에 저지른 죄(?)로 스승 유영모의 내침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고 풀어가는 논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평전을 쓰는 이들은 대체로 옹호하기 바쁘다. “다만 짐작컨대, 킹의 경우 공인으로서 그가 발휘하던 중요한 힘의 태반이 바로 이 영혼과 육신 양자 간의 내부 분열과 팽팽한 긴장에서 비롯되었으리라.” - 마셜 프래디, “철저한 고독속에서 괴로움을 감내한 경험이야말로 또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할 힘의 원천이 되지는 않을까. 함석헌의 경우가 그러했다.” -김성수)
한 줌의 자각
무엇을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지다시피 했으며 정열적인 창작 대신 여가 활동과 소비가 유일한 관심사가 되었다. 보고서를 위한 문장은 늘지만 나를 위한 문장은 인간과 더불어 썩어가고 있다. 아직은 스스로 죽어가는 모습을 자각할 수 있지만 그 기이함 자체도 숨을 조여오고 있다.
애초에 자아에 대한 기준을 높게 잡았다기보다는 예정된 타락으로 보인다. 그나마 바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은 나락으로 가는 길동무를 찾는 일인데, 온실의 화초에게 준비된 최후는 사실 지극히 쓸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