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삼대

"… 각 분야를 이끄는 가장 경쟁력 있는 세력들은 그러한 이디오진크라지를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36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횡설수설하는 늙은이의 한물간 정신은 멍청한 겉똑똑이에 불과한 젊은이보다 대화에 열려 있다. 늙은 세대의 신경질적인 괴팍함마저 젊은 세대의, 규범으로까지 승격된 유치함이나 병적 건강함과 비교해보면 인간적 성숙을 보여준다. 예전에 세상을 대변하는 부모에 반항할 때 우리는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세상에 대항하는 더 나쁜 세상의 대변인이었음을 깨닫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37

<미니마 모랄리아>

미디어의 집중포화를 맨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이곳에서 미디어의 해독법이 정규 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덕분에 우리는 미디어에 취한 상태에서조차도 황당하게 느껴지는 광고 문구들을 종종 만나게 되며, 누군가에게 진심을 표현할 적절한 선물조차 떠올릴 수 없는 정신이 되고 말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질문은 이미 그 질문 자체가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그 애처로운 시도의 수명을 다했다.

우리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금언을 싹 잊어버리게 할만큼의 유치하고 무례한 발언을 매일 매시 쏟아내는 성인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와중에 정신의 한가닥 고결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들은 이러한 현실에 질린 나머지 폐허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된다. 사회에 대한 한탄도 유행처럼 되어, 약삭빠른 미디어의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되었다.

이 시대에 이런 문장을 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의미하고 어려우며, 이로부터 탈출하려는 모든 시도가 그렇듯 고독한 일이다. 교육받은 대로 주목을 끄는 몸짓을 하고 그럴듯한 언사를 부치는 행위가 존경을 얻는 첩경이다. 나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피하려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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