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생이었다. 나는 불행한 학생이었다가 불성실한 학생으로 바뀌었다. 무엇인 동시에 무엇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 무엇이 되고자 했다. 우리도 그랬다. 더 성실해지고 싶었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1년간 불성실했던 나도 교육이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 것쯤은 안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학습지도는 말 그대로 교과서의 지식을 학습하는 일에 관한 것이고, 생활지도는 학생 개인의 품성과 인성 발달에 관한 교육이다.
사실 나는 생활지도에 자신이 없다. 학습지도를 잘하려면 물론 소질이 있어야겠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충분히 숙달될 수 있다. 생활지도는 교사 개인의 양심과 믿음이 깊이 관계있는 문제다. 교사 스스로가 자신을 학생을 가르칠만한 인격을 가진 것으로 여기는가?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그러한가?
단지 학교의 교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사는 이상, 특히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회에 사는 화자인 이상, 우리는 언젠가는 누군가의 상급자가 된다.
상하의 위계질서는 결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대화가 오고가야 건강한 관계다. 상급자의 권력(권위)은 하급자의 존중에서 시작한다. 존중이 대화 없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교사도 한때는 학생이었다. 교육이 변함에 따라 학생도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교사는 자기와 다른 교육을 받은 학생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재작년 즈음에 흥미로운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두발규제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교실 창문에서 두발규제를 반대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 일이었다. 폭력이 없었으니 평화롭고 보도가 되었으니 효과적인 시위였다. 내가 불행한 학생일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느꼈다.
나는 불행했고, 상황을 바꿀 유일한 방법은 연대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는데, 우리 모두는 겁쟁이여서 누구도 나서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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