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수요일

바람난 가족

미디어가 갈수록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탄식도 그 가운데 하나다. 충격적인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탄식하거나 침묵한다. 침묵하는 무리 중 일부는 동물의 특징에 충실하게 학습을 수행한다.

작가를 비롯한 현대의 이야기꾼들은 게임을 매력적인 소재로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비상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다른 인물들을 영향력 아래 장악하고 일련의 규칙을 가진 게임을 펼치는 이야기는 흔한 구도다. 게임에는 규칙이 있고, 우리는 윤리와 법을 만들고 교육한다. 혹자는 사회가 거대한 유기체라고도 한다. 한 인간은 거대한 규칙의 망 속에서 일관성을 찾아 움직인다. 스스로 일관성을 찾는 데 실패할 경우, 대개는 비참함이나 참담함 내지는 무력함을 느낀다. 신년 계획을 세우거나 좌우명을 정하는 것도 비슷한 일련의 노력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스스로 정한(혹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어느 시대에는 종교가 일관성의 척도였고, 과학이 그랬던 때도 있다. 이제 누구도 쉽게 최상의 규칙을 말하지 못한다. 청교도적인 삶을 교의로 삼는 이와 쾌락을 좇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다양성은 이 시대를 묘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두 가지 정도는 동시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꺼번에 모든 기준을 충족할 수는 없다.

모든 윤리적인 죄책감(혹은 크나큰 아쉬움)은 충족되지 못한 욕심의 자해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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