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5일 일요일

질투

한영엣센스 사전에서 'envy'를 찾아보면 질투와 부러움이라는 번역을 제시해준다. 민중국어사전에 의하면 질투는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고, '부럽다'는 "남의 좋은 것을 보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혹자에 의하면 envy는 죄악이라고 하는데, <세븐>의 존 도는 그 대가로 죽음을 선사한다.

남을 깎아내리려 하는 것과 남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죄에 가까울까? 제가 올라가는 대신 남을 끌어내리는 행위 저변에는 '주제 파악'이 숨어있다. 내가 못난 것을 알기 때문에 고르는 차선책인 셈이다. 남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주제 파악'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요즘 기부는 미덕이지만, 나눔도 주머니 사정을 봐가며 해야 할 노릇이다. 흔히 봉사는 아름답다고 하지만, 무릇 글씨 하나를 써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했다. 제가 스스로 가진 것이 없음을 알면서 나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동정심을 가지고 누굴 돕는다거나 잘난 사람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케빈 스페이시가 나타나 응징을 가하지는 않는다. 단지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쓸데없는 간섭을 하거나,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다가 제가 죽은 지도 모른 채 60세까지 걸어다닐 친구가 걱정되어 해보는 말이다.

쓰고 보니 질투에 대한 변호처럼 되었다. 전통적으로 복수는 권장되지 않는 악덕이었지만, 매혹적인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복수를 악덕으로 규정한 이는 단지 복수가 두려워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복수는 생각하는 자체만으로 커다란 스트레스다. 죄책감과 인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게 무어 문제가 되겠는가. 복수를 실현하는 순간의 관계 속에서 분명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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